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 열린책들 | 2009-12-20 | 양장본 482쪽 | 14,800원

길 위에서 만난 불멸의 철학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순한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평생을 떠돌며 살았던 작가가 크레타 섬에서 만난 한 노인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여행기입니다. 카잔차키스는 비행기도 없던 시절, 유럽 전역과 중동, 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방랑했습니다. 그의 연보를 보면 50세가 되어서야 장기적으로 머무른 집이 생겼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길 위의 사람이었습니다.

작품 속 30대 중반의 지식인 '두목'은 카잔차키스 자신의 분신입니다. 그는 크레타 섬에서 갈탄광 사업을 하기 위해 60대 중반의 조르바를 현장 감독으로 고용합니다. 하지만 이 만남은 단순한 고용 관계를 넘어, 30년의 시간차를 뛰어넘는 두 영혼의 깊은 교류로 발전합니다. 두 사람 모두 길 위의 존재였기에 가능한 만남이었습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조르바의 대답

고용이 결정된 순간, 조르바는 두목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는 꼭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나는 자유롭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단순한 법적 자유나 신체적 자유가 아닙니다. 조르바가 말하는 자유는 두려움과 충동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새겼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 문장은 조르바에게서 배운 삶의 철학을 응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두려움을 떨쳐내고, 어떻게 충동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리스인 조르바』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충동을 다스리는 조르바만의 기술

조르바는 충동을 조절하는 특별한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터득했습니다. 어렸을 때 버찌가 너무 먹고 싶어 잠도 못 이룰 지경이 되자, 그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 버찌 한 소쿠리를 사서 토할 때까지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버찌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도자기 일을 할 때 손가락이 자꾸 실수를 만들자 손도끼로 손가락을 잘라버렸습니다. 향수병이 밀려올 때는 목구멍에서 더 이상 치밀어 오를 수 없을 때까지 그 감정을 끝까지 체험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들이 보여주는 것은 조르바의 정직함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술과 담배를 즐기지만, 언제든 끊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끊을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이것을 넘어가지 않는 한 결코 자유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능력, 소유하지 않는 기술

조르바에게 영원히 경탄과 경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을 볼 때마다 신기함과 설렘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사랑을 경험했지만 여성의 신비를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독특한 사랑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조르바는 어느 마을을 가도 과부가 있으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능력입니다. 이용하거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숙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여자와 잘 수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남자는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신은 그런 남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크레타 섬에 도착하자마자 조르바는 늙은 카바레 가수 오르탕스 부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놀라운 것은 조르바와 사랑을 나누면 여성의 주름살이 펴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주름살을 펴보겠다며 사랑하겠다고 하지만, 조르바는 실제로 여성의 주름살을 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여성이 자신의 황금기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었고, 그 순간 여성에게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발견했습니다.

카사노바 같은 전설적인 플레이보이들은 잘생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외모로 승부하는 것은 오히려 후진 방법입니다. 진정한 매력은 말과 귀에서 나옵니다. 말을 재미있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진솔하게 들려주며, 무엇보다 여성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을 줄 아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절대로 여성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사랑은 너무나 쉽게 소유로 변질됩니다. 대중가요조차 '내 거', '내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조국과 신을 넘어서

20세기 초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스는 터키의 속국이 되었다가 독립하고, 발칸반도 전쟁이 일어나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조르바는 조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목을 벤 사람의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조르바는 도끼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국의 이름으로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반생명적인 것이었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그 아이들에게 주고, 그때부터 조국으로부터, 신으로부터, 애국적 광기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조르바는 사람을 볼 때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인종인지, 어떤 이념을 가졌는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인간 그 자체만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현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범신론적 신체, 우주와 하나 되는 경지

조르바의 신체는 범신론적이었습니다. 천지만물과 교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갈탄광에서 노동할 때는 광맥을 피부로 느껴 무너질 것을 미리 감지하고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노동할 때는 노동과 완전히 일치했고, 해변가에서 쉴 때는 산토르를 켜며 축제처럼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해가 뜰 때는 생명의 신비에 감탄했습니다. 에로스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생명 충동이자 우주적 도약이었습니다.

곡괭이를 들었을 때나 산토르를 켤 때나, 조르바에게는 항상 생의 환희가 가득했습니다.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업의 실패와 진정한 성공

두목과 조르바는 결국 갈탄광 사업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목은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르바에게서 배운 삶의 자세였습니다. 사업을 망치지 않았다면 분통이 터져 폭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편할 수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조르바는 계속 떠돌다가 시베리아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 드디어 결혼했어. 굉장히 어린 여자랑." 60대 노인이 왜 갑자기 결혼했을까요? 너무 추워서 어느 집에 장기 투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조르바다운 이유였습니다.

육신이 된 영혼, 불멸의 작품

조르바가 죽기 전, 두목은 해안가에 있으면서 조르바 이야기가 오장육부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몸속 세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조르바와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글로 쓰면 조르바가 죽을 것 같아 참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일주일 동안 미친 듯이 조르바의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원고를 완성하고 해변가에서 그것을 안고 있을 때, 마치 아이를 낳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르바의 영혼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그때 조르바의 유언이 담긴 엽서가 도착했습니다. 조르바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불경으로 육신이 되듯이, 조르바의 삶은 두목의 글쓰기로 육신이 되었습니다. 이 글이 바로 조르바의 새로운 육신이었습니다.

길 위에서 완성된 철학

카잔차키스는 평생 동양사상과 서양철학을 넘나들며 여행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에 참여했다가, 프란체스코 성인을 존경해 수도사가 되려 했고, 불경에 심취했습니다. 21세기 이전에 이미 동서양의 융합을 몸소 실천한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결혼도 두 번 했고, 성직자병이라는 희귀병까지 겪으며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해 아테네에 들어갈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의 무대인 크레타 섬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와 함께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킨 스승으로 조르바를 꼽았던 카잔차키스. 그에게 조르바는 단순한 노인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난 위대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묻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려움과 충동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조국도, 신도, 욕망도, 소유욕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길 위에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