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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제국의 눈물, 무엇이 튀르키예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나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외부의 침략이나 거대한 천재지변으로 결정되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붕괴는 바로 '내부'에서 소리 없이 시작됩니다. 동서양의 문명이 교차하는 화려한 역사의 주인공이자,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던 나라 튀르키예가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우리가 흔히 튀르키예를 떠올릴 때 상상하는 것은 카파도키아의 낭만적인 열기구, 이스탄불의 웅장한 사원, 그리고 활기 넘치는 그랜드 바자르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튀르키예 현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비명에 가깝습니다. 어제 먹었던 빵 가격이 오늘 다르고, 월급을 받자마자 달러나 금으로 바꾸기 위해 환전소로 달려가야 하는 현실은 단순한 경기 불황을 넘어섰습니다. 오늘은 정치가 어떻게 경제의 기본 원리를 훼손하고 사회 시스템을 잠식하여, 결국 평범한 국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되는지 그 서늘한 현실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콘크리트 속에 감춰진 검은 거래, 안전을 팔아넘기다
튀르키예의 정치는 오랫동안 '건설'을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다리, 신공항,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는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초기, 이러한 건설 붐은 튀르키예 경제를 견인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부패의 고리가 형성되었습니다. 정부와 유착한 친정부 성향의 건설사들은 막대한 이권을 챙겼고, 그 대가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규제들은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특히 선거철마다 반복된 '건축 사면(Zoning Amnesty)'은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일정 금액의 벌금을 내면 불법 건축물을 합법화해 주는 이 제도는 표를 얻기 위한 달콤한 사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의 머리 위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지난 대지진 당시, 맥없이 샌드위치처럼 무너져 내린 신축 아파트들은 자연재해가 아닌 명백한 '인재(人災)'였습니다. 철근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부패한 정치권력의 탐욕이 들어찼을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으로 치러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를 거스르는 1인 권력의 아집
국가 경제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튀르키예에서는 정치가 경제를 완전히 지배하며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전 세계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긴축 정책을 펼칠 때, 튀르키예 정부는 오히려 금리를 내리는 기이한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이는 "이자율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며, 금리를 낮춰야 물가가 잡힌다"는 에르도안 대통령만의 독특하고 완고한 경제 철학인 '에르도노믹스(Erdonomics)'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청개구리식' 금리 인하는 이슬람 교리에 기반한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싼 이자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중앙은행 총재들이 반대 의견을 낼 때마다, 돌아온 것은 파면 통보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중앙은행 총재를 수시로 교체하며 금융 당국을 사실상 자신의 비서실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고 독주할 때, 리라화의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습니다. 수입 물가는 폭등했고, 중산층은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정치적 신념이 전문성을 압도하는 순간, 국가의 경제 시스템은 마비되고 국민의 지갑은 찢겨나간다는 것을 튀르키예의 사례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떠나는 청년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부패한 정치와 망가진 경제가 가져온 가장 뼈아픈 결과는 당장의 가난보다 더 무서운 '미래의 실종'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엔지니어가 되어도,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할 수 없고 정치적 줄대기가 성공의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절망합니다. 현재 튀르키예에서는 고학력 인재들이 더 나은 삶과 자유를 찾아 유럽 등지로 떠나는 '두뇌 유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국가를 지탱할 인재들이 떠난 자리에는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정치 세력과 그에 기생하는 이익 집단만이 남게 됩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고갈된 국가는 다시 일어서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튀르키예의 현실은 우리에게 묵직한 경고를 던집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고 권력이 견제받지 않을 때, 아무리 찬란한 역사와 지정학적 강점을 가진 나라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패와 독선은 단순히 돈을 낭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신뢰를 갉아먹고 국가의 미래를 지우는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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